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만 파블류첸코 (문단 편집) === [[토트넘 홋스퍼 FC]] === [[파일:r.pavlyuchenko tottenham.png]] 이때의 활약이 계기가 되어 유로 2008 종료 후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 핫스퍼]]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이적 문제로 인해 합류 시점이 프리시즌이 한창이던 시기가 아니라 여름 이적시장이 닫히기 직전에 사실상 패닉바이로 영입되어 적응에 애를 먹어야 했다. 2008년 9월 15일 아스톤 빌라전에서 데뷔한 후 9월 24일 칼링컵 3라운드 뉴캐슬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했다. 리그에서 좀처럼 득점하지 못하며 시즌 초반 2무6패로 최하위로 떨어진 토트넘 부진의 원흉으로 비판을 받다가 2008년 10월 27일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볼턴 원더러스]]와의 경기에서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넣었지만 이후에도 골을 잘 넣지 못하면서 리그에서는 28경기 5골에 그치며 매우 부진했다. 결국 겨울 이적시장에서 [[로비 킨]]과 [[저메인 데포]]가 컴백하며 후반기에는 벤치로 밀리는 일이 많아졌다. 리그와는 정반대로 컵대회에서는 밥값을 했다. 칼링컵 6경기 6골에 FA컵 2경기 3골을 기록하며 국내 컵대회에서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며 토트넘을 2년 연속 칼링컵 결승으로 이끄는 1등 공신이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칼링컵 결승에서만 득점하지 못하고 나머지 경기에서는 모두 득점했다. 영국 생활에 대해 많이 힘들어하는 듯 하였다. 러시아어만 할 줄 알았던 당시 파블류첸코는 영어 정도야 6개월이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고 하는데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 중에 같은 동유럽 권인 [[네마냐 비디치]]와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비디치가 "6개월 같은 소리하네" 라고 말해서 멘붕에 빠졌다고 한다.[* 비디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 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뛰었는데 이는 당시 파블류첸코의 소속팀이었다.] [[해리 레드냅]] 감독의 영어 지시를 이해 못해서 그라운드에 고립된 상황에 놓이는 상황이 자주 보였고, 그리고 또 무엇보다 가족들도 영국에서 적응을 못했다. 특히 아내가 러시아를 무척 그리워 했다고 한다. 2009년 5월 16일 토트넘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였던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종료 15분을 남기고 교체되었는데 벤치로 합류하지 않고 곧바로 터널으로 직행해 [[해리 레드냅]] 감독으로부터 경기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한 팬들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공개적인 디스를 받았다. 이에 대해 파블류첸코는 사과를 했고 교체 지시가 아닌 자신의 플레이에 화가 나서 그랬다고 해명했다. 2009-10 시즌 [[피터 크라우치]]가 영입되며 파블류첸코는 공격수 4옵션으로 전락했다. 전반기에는 칼링컵 아니면 벤치에 있거나 명단제외를 당하며 거의 경기에서 보이지 않았고, 겨울 이적시장에서의 이적설이 끊이지 않았다. [[로코모티브 모스크바]],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AS 로마]], [[AC 밀란]], [[헤르타 BSC]], [[버밍엄 시티]],[[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그리고 친정팀인 [[스파르타크 모스크바]]로의 이적설이 나왔다. 파블류첸코는 구단이 왜 자신을 이적 명단에 올리지 않는지 의아해했다. 2010년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크라우치가 적은 득점으로 비판받고 로비 킨이 셀틱으로 임대가고 아이두르 구드욘센이 임대온 가운데 1월 23일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FA컵 32강에서 교체출전하여 득점했다. 그리고 2월 21일 프리미어리그 위건 원정에서 교체출전하여 팀 승리의 쐐기를 박는 2골을 터뜨렸다. 2월 24일 볼튼과의 FA컵 16강 재경기에서는 간만에 선발출장하여 2골을 터뜨렸고 토트넘을 8강으로 이끌었다. 2월 28일 에버튼과의 리그 경기에서 크라우치를 제치고 시즌 첫 리그 선발출장해 선제골을 터뜨려 2월에만 3경기 5골을 기록하며 단숨에 토트넘의 난세영웅으로 등극했다. 점차 선발출전 비중이 늘어난 파블류첸코는 상승세를 이어가며 3월에는 리그 블랙번전에서 2골, 풀럼과의 FA컵 8강전 재경기에서 1골을 터뜨렸다. 4월에는 득점은 없었지만 첼시와의 홈경기에서 도움 2개로 팀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파블류첸코의 활약에 힘입어 토트넘은 4위로 시즌을 마쳐 48년 만에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다. 그럼에도 2010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리버풀 FC]]의 [[요시 베나윤]]과 맞트레이드당할 뻔하기도 하였으며, [[포르투갈]] 축구팀인 [[스포르팅 리스본]] 임대설까지 나도는 등 그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었다. 10/11 시즌 [[토트넘 핫스퍼]]의 공격수들이 하나같이 골을 못넣고 있던 상황에서 그나마 그들중에는 골을 나름 넣어주고있어서 입지를 다시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레드냅 감독과의 불화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으며, 언론에 대놓고 토트넘과 계약은 없을 것이라고 선포를 했다. 덩달아 레드냅 감독은 내가 활약을 하든 뭘 하든 신경을 안 쓴다라고 말했다. 당시 파블류첸코의 성적은 18경기 (선발은 9경기) 5골이라는 불화를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리그에서 총 10골 4도움을 기록했다. 결국 11/12 시즌중 [[맨체스터 시티]]에서 임대되어온 [[엠마누엘 아데바요르]]에게 주전 원톱 자리에서 밀리고 코치진과 불화를 겪은끝에 고국인 러시아의 [[FC 로코모티브 모스크바]]로 750만 파운드(약 120억원)에 이적이 확정되었다. 그는 토트넘에서 총 111경기에서 40골을 넣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